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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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세계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5-6). 창세기 1, 2장을 보면 하나님은 혼자서 인간을 위해 우주 질서와 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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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마가복음 15장, 그들은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았다. 날이 어두워졌고 으스스한 기운은 대지를 감돌고 있다.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다짐했던 베드로는 어디에 있을까? 십자가의 현장에도 “멀리서 바라보는” 무리 중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언급되지 않는다. 일부 여자들을 포함하는 멀리서 바라보는 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죄를 지은 자가 달려야할 십자가에는 죄 없는 인자가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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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심(막 13장)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33절) 이제 며칠 후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하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그의 아버지에게 가야하지만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신다는 확고한 약속의 말씀 재림에 관한 가르침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아래 예수님이 다시 한 번 주인공이 되는 사건이 된다. “그 때에”(24절)는 환난의 때(종말)이고 숨겨진 비밀이 풀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두가 경험하는 대 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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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의 소굴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마가복음 11장 17절 말씀이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예수님이 성전을 방문했을 때 성전 안에서 일어난 바람직하지 않는 일들에 대해 가르침을 실행했던 사건이다. 예수님이 보고 경험한 성전안의 실상은 가난한자와 약한 자들을 착취하는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있고 부를 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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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마가복음 10장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여러 이해도 있지만 제자도에 관한 3번째 가르침 일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모든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오셨다. 제자들은 생각의 변화를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10장의 이 말씀을 다시 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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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마가복음 8장)

8장은 예수님이 1장1절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제를 결정적으로 가지고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해야만 한다. 그런 후 우리가 고백한 그리스도가 어떤 그리스도인가 돌아보며 그리스도에 대한 본질적 정의를 받아들이고 그 바탕위에 바른 제자도를 발전시키는 이해와 삶을 요구받게 된다. 이 불합리하게 보이는 논리는 매우 성경적이다. 31절에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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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가복음을 최초의 복음서로 간주한다. 전승에 기초해 마가가 저자(유세비우스의 인용)라고 보는데 베드로의 순교 직전이나 직후에 로마에서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본문은 70년에 발생한 성전 파괴에 대한 어떠한 진술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그 후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드실바는 청중에 대해 “19세기와 20세기 학자들은 복음서를 바울 서신들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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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서

히브리 성경의 성문서(Ketuvim)에 포함되어 있는 이 책을 전승 적으로 예레미야 애가라 부르지만 지금은 단지 익명의 책, 애가서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학자들은 조언한다. 본문 또한 예레미야의 저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본문의 전반적인 내용은 주전 586년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성의 파괴에 대한 충격을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관점의 시선에서 그려낸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은 성경전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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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과 “남은 자” (예레미야 50장)

구약에서 이사야서를 공부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지만, 예레미야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설교 또한 마찬가지다. 용서나 사랑은 몰라도 고난과 심판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레미야서는 심판으로 시작해 심판으로 끝난다. 예레미야서 1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말한다. 왜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을까? 답은 쉬어 보인다. 하나님 말씀은 제한적이지 않다. 모두에게 심판의 때가 있고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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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고와 신실 (예레미야 42: 7-22)

오늘 본문은 41장16부터 43장 7절까지 연결되는 구조 안에 있고 이해는 37장부터 44장이라는 큰 단락 안에서 이루어져야한다. 예루살렘은 이미 바벨론에게 함락(39장)되어있다.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임명한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는 최종 심판대에서도 여호와 말씀을 듣지 않았다(37:2). 이 흐름은 42장 21절에서도 백성에게 지속되고 매우 중요한데 불행하게도 심판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41장에서는 유다 왕족이며 장관인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이 미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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