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보아도 운동 신경은 없었지만 운동을 좋아했다. 단거리인 100미터 달리기는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오래 달리기는 좋아했고 좀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단거리와는 다르게 오래 달리기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평화롭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견디기 어려운 시점에 다다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익숙해져야하고 견디고 또 견디며 달리면 된다. 같이 달리는 경쟁 선수 보다는 자신의 페이스가 중요하고 자주 등장하는 커브길이나 경사를 즐길줄 알아야한다. 시작부터 찾아오는 심리적 갈증에 대해 인내하며 조절하는 것은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경기 중 예상치 못한 근육들의 반발은 경기를 중단하거나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게하는데 일상에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좋은 몸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 된다.
좀 더 전문적으로 들리는 마라톤은 단지 단단한 육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개인적 삶을 같이 짊어지고 달리고 좋은 결과는 자신의 영광을 만들어낸다. 결과에 따라 개인적 삶에 대한 인간 승리로 회자되기도 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실패에 대한 자책과 비난 또한 만만치 않다.
나는 릴레이의 매력에 더 빠져있다.
단체경기로 알려진 이런 경기는 개인적이기도 하고 공동체적인 경기다. 물론 릴레이에서 모든 선수들의 기량이 일정하게 중요하다. 첫 선수에게 주어지는 빠른 스타트의 부담은 담대함을 소유한 선수가 몫이고 마지막 주자는 우승에 대한 집념이나 패기가 남달라야한다. 직선 코스에서는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선수여야하고 커브의 위험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선수간의 바통을 체인지할 때이다. 경기 중 가장 가슴조이고 정교함이 필요한 때이다. 자기가 편하게 쥐었던 바통은 다음 주자를 위해 그 편안함을 반드시 양보해야만 한다. 그 가장 위험한 긴장은 달리는 선수나 보는 관중 모두 스릴이 있다. 이렇게 매 경기마다 개인 선수들의 능력과 함께 팀 선수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릴레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손자, 손녀의 가족 공동체에서 늘 진행되고 있다.
릴레이 경기 중인 우리의 삶은 첫 주자이고 중간주자이고 마지막 주자일 수 있다. 첫 주자라면 휘슬과 함께 출발해야하고 타 선수를 방해하지 않고 경기 중 선을 넘지 않아야한다. 바통을 잃어버리지 않아야하며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섬세하게 넘겨주어야한다. 우리는 각 구간을 달리면서 최선을 다하지만 가진 바톤을 잃어버리지 않아야하는 원칙적인 삶의 릴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통은 경기 시작부터 마지막 지점까지 반드시 캐리 되어야 한다.
한 선수나 모든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 경기를 무사히 마쳤다 해도 바통이 마지막까지 캐리 되지 않거나 불법적으로 전해졌다면 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팀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우리 삶에는 이 바통이 항상 쥐어져있고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바통은 물질일 수 있고 명예일 수 있고 권력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받은 명령을 포함한 지혜일 수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은 릴레이중인 내가 쥐고 있는 바통이다. 나는 이 바통을 두 아들과 가족 공동체에게 안전하게 전해줄 책임을 가지고 달리고 있다.
우리는 이 삶의 릴레이가 끝나기 전에 주자로서 다음 세대 주자에게 어떤 바통을 넘겨주어야 할지, 결승점에 서있는 하나님에게 어떤 바통의 흔적을 내밀어야 할지 아니 몇 번의 위험한 출발에서 돌아와 조정할 수 있는 기회 속에 아직도 살고 있다.
오늘 내가 쥐고 있는 바통은 어떤 바통일까?
다음 주자인 아들과 딸 주자에게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소망을 품은 바통일까?
우리 각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받은 바통의 흔적을 결승점에 서있는 하나님에게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