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성경의 성문서(Ketuvim)에 포함되어 있는 이 책을 전승 적으로 예레미야 애가라 부르지만 지금은 단지 익명의 책, 애가서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학자들은 조언한다. 본문 또한 예레미야의 저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본문의 전반적인 내용은 주전 586년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성의 파괴에 대한 충격을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관점의 시선에서 그려낸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은 성경전반에서 매우 중요한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큼이나 중요하다. 심판과 구원의 과정이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회복에 대한 소망이 개인적이기도 공동체적이기도 한데 아주 체험적이고 실질적이다.
애가서는 유대교의 특정 절기와 연결된 메길롯속에 배열되어 있는데 아브월 9일의 축제와 관련된다. 장송곡이고 애가로써 두운시적인 양식으로 되어있다.
여호와는 분노로 차있고 한때 약속의 백성들을 적으로 묘사하며 잔인할 정도로 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여호와는 오랜 세월동안 인내하며 선지자를 보내 그의 뜻을 전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러니 잔인하기 보다는 공의로운 그에게 옳은 행위였다. 그 세월만큼이나 심판은 진지하게 진행된다.
이제야 돌아보는 참회의 현장은 모든 배후에 여호와가 있음을 자복한다. 앗수르나 이집트 그리고 바벨론이 아니었다. 바로 여호와가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제 당연히 그를 향한 회개와 탄식 그리고 애통이 가득 담겨있다. 참회자들은 공포와 비탄에 잠겨 여호와 앞에 서지도 못하며 그들은 단지 여호와의 신실함에 의존해야 하는 사실에 무릎 끊고 있다.
이제 심판에 순종하고 고통을 견뎌야하고 여호와의 공의를 신실함으로 설득해야한다. 언약 백성들은 듣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들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여호와는 지금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3:10-11). 그러나 여호와는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3:32-33).
그리고 5장 21절은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호소한다.
인생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그의 뜻을 이루시도록 고난을 통해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