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지혜

심리적 또는 경제적 고난 속에 있는 주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상당히 많다. 절대자에게 의지하며 기도해 주는 것과 그들 옆에 있어 주거나 말을 들어 주거나 희망 섞인 대화를 주고받는 일들이 그런 것이다. 또 힘닿는 선에서 경제적인 도움도 줄 수 있다.

질병으로 힘들어 하면 특별한 관계 속에 있거나 공동체 안에서는 아픈 사람들의 일상을 챙겨주는 구체적인 도움으로 확장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원으로 라이드해 주거나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돌아가면서 식사를 제공한다든지 집안일들 돕거나 그리고 회복되는 아름다운 스토리를 기대한다.

당연해 보이지만 이 시대에 이런 사랑을 베푸는 일이나 받는 일이 쉽다고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지는 실천하는 사람들만의 고백에 담겨있다.

간암으로 치료중인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혼란해 하고 있다.

환자들은 의사로 부터 명확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현재 상태가 어떻게 되고 언제까지 지속되며 어떤 치료를 통해 언제까지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만약 회복이나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그때가 언제인지. 많은 경우 치료하는 의사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88살의 아버지는 이 병을 이기고 싶어 한다. 당연하다.

나이가 많아 수술은 쉽지 않다. 식이요법을 통해 이것저것 구별해 먹으며 조절해 보지만 가시적 효과는 없어 보인다. 항암치료를 통해 암세포를 죽이고 그에 따른 고통을 견뎌보지만 더 힘든 것은 암세포의 활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안개속이다.

우리가 만약 마지막 때를 안다면,

이런 인생의 종착역에 다가갈 때 지혜자가 되는 것은 병을 이기는 것만큼이나 중요해 보인다. 더 살아야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이유 없는 삶은 없다 단지 삶이 그것을 망각할 따름이다. 누구도 사후세계를 경험하지 못했는데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까 아버지는 그것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산 사람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마음으로 만나야한다.

아들과 딸들은 자신들의 회고뿐 아니라 그 자녀들에게 전할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 이것은 비록 죽음과 관계가 있어도 새로운 소망을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여야 한다.

우리는 후대에게 회고되고 전해지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제 시간은 많지 않고 비록 암으로 죽음을 맞이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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